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살면서 한번이라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신 적 있으시죠?
여기 우리의 삶의 태도와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는 길잡이 책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서기 55년에서 부터 만 20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도록 전해져오는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제가 이 책을 접하게 된 이유는 내부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에픽테토스가 강조한 자유', 이 자유는 어떤 외부의 힘에도 굴복하거나 좌절되지 않는 내면의 자유를 말한다. 과연, 내가 이런 내부의 힘을 키울 수 있을까? 과거 나는 대단히 물러터진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세 보이지만 속은 흐물흐물 물러터진 그런 사람말이다.
20대때는 괜찮았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내가 실패했다 생각해도 다시 일어 설 에너지가 충만했다. 하지만 20대 후반이 되니, 나의 체력은 급격하게 고갈되기 시작했다. 일도 일이지만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에너지가 바닥이 나는 일이 반복되었고, 그제서야 나는 나의 내부힘이 약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을 읽은 후, 나는 엄연하게 세상의 진리에서 마침내 눈을 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만 살면 내 남은 인생은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에픽테토스의 가르침>
1.내 권한 밖에 있는 것을 바라고 있다면 불행해진다
세상만 사는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 현실에 맞추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하는 것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권한에 속하는 것들과 속하지 않는 것들.
내 권한에 속하는 것은 사고, 노력, 바람, 혐오등 우리가 하는 행위다.
내 권한에 속하지 않는 것은 육신, 재산, 명예, 통치 등 우리가 하는 행위가 아닌 것이다.
내 소관과 남의 소관 먼저 제대로 구분함으로써 바랄 것만 바란다면, 그 누구로부터 강요당할 일도, 방해받을 일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할 일도 없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할 일도 없다.
타인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봐주길 바라는가?
상사가 나를 믿어주길 바라는가?
하지만 이 모두 우리 소관이 아닌 남의 소관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나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나 스스로를 내가 먼저 믿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뭐든 겉이 번지르르한 것을 보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완전한 실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내면의 힘을 키우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이것이 과연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이다' 만약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무시하도록 하라.
2. 감수해야 얻는다.
만찬에 가면 유독 사람들이 많이 인사하러 몰리고 조언을 구하러 몰리는 등 특별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있다
남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화를 내고 불평하면서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때로는 남들이 잘 때 깨어 일을 해야 하고,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기도 하며, 남들로부터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 심지어 명예, 지위, 정의, 그 외 모든 면에서 최악의 것을 감당해야 하기도 한다. 마음의 평화, 자유 평온함을 위해 기꺼이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감수할 용의가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라.
그 대신 선한 삶이든 악한 삶이든,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내면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 것인지,아니면 외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선한 삶을 선택할 거다. 그리고 내면인 것과 외적인 것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사실 둘 다예요.
내면은 제 삶에서 제가 가꿔야 할 너무나도 중요한 영혼이고, 외적인 것도 사실 저한테는 너무 중요해요.
한번은요. 제가 아침마다 이렇게 꽃단장하고 있는 게 너무 스스로 극혐인 날이 있었거든요.왜냐면 이 옷 입어보고 저 옷 입어보고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리는 거예요. 그리고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나가기도 전에 약간 지치는 거 있죠. 그래서 아유 내가 꽃단장을 한다고 옛날처럼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렇게나 입고 나가 하고 진짜 아무렇게나 입고 나갔어요. 여기서 아무렇게나는 약간 유행지났는데 계속 입던데로 입은거예요. 제가 유행에 발빠른 편은 아니지만 뭐가 유행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거든요. 옛날에는 딱 달라붙는 스키니나 부츠컷 청바지가 유행했었잖아요. 그런 것들을 막 입고 나갔죠. 당시 막 헐렁한 바지가 유행하는 참이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제가 입은 옷을 볼 때마다 너무 싫은 거예요. 아니 남들 한테 잘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제가 거울 속에 비쳐진 제 옷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안드는거예요. 그리고 그 날 집에 가서 바로 그 청바지 나눔하고 새로운 청바지를 샀어요.
제가 여기서 유행에 뒤 떨어지면 안돼요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구요.본인 성향을 거스를 필요는 전혀 없다는 말씀을 꼭 하고 싶었어요. 저는 그게 저의 성향이더라구요. 내가 보기에도 깔끔하고 조금은 멋스럽게, 고급스럽게 나를 꾸미고 싶은 욕구.이런 게 저에게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꽃치장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아쥼마이지만 저를 가장 최적화시킬 수 있는 옷, 신발, 모자, 선글라스등을 장만했습니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외면도 가꾼다고 생각하니 내 자신이 훨씬 더 소중해지고 왠지 모를 자존감도 올라갔어요.
그래서 저는 때에 따라 다르지만 내면 6~7 : 외면 : 4~3근데 외면이 아무리 중요해도 내면보다 더 중요시되면 안되겠죠.
내면의 힘이 약하면 아무리 외면이 눈부시고 아름답더라도 행복해질 수 없거든요.
3. 인간관계 조언
다른 사람으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썼거나 비난을 받을 떄는, 그 사람은 그게 옳다고 생각해 그렇게 행동하거나 말을 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그들은 내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고, 다만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뿐이다.
그들이 보기에 잘못이라고 생각되면 그들은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기만한 셈이 ㅚㄴ다. 누가 어떤 진실을 두고 거짓이라고 여긴다면, 그로 인해 손해를 보는 것은 거짓이라고 여긴 사람 자신이 때문이다.
사람은 재산이나 언변으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너보다 부자이므로 너보다 낫다" 혹은 너보다 언변이 더 뛰어나므로 너보다 낫다"라고 말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나는 너보다 더 부자이므로 너보다 돈이 많다. 혹은 나는 너보다 언변이 더 뛰어나므로 너보다 설득력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사람은 재산이나 언변으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만200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많습니다. 학창시절 저 또한 그렇게 부유한 삶을 산 게 아니라서요.. 저 또한 어렸을 적엔 부자 또는 가난한 사람을 부자는 = 능력이 좋은 사람, 배울 게 많은 사람으로 생각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건 우리가 부모가 되고나서 이러한 가르침을 자식들에게 줘야 하는 것 같아요. 우리 동네 아파트에서 조금 비싼 아파트가 있는데 그 아파트 아이들은 다른 아파트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교육을 받았대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나는 너보다 더 부자이므로 너보다 낫다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을겁니다. 우리는 절대 재산이나 재능으로 타인과 나의 쓸모를 정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와도 국무총리가 와도 그 사람과 우리는 인간 대 인간 동등하다는 사실 절대 잊지마세요. 그저 사람대 사람. 너도 사람 나도 사람 우린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꼭 명심하세요.
저는 특히 이 구절이 공감 많이 되었는데요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늘 지켜야 할 태도와 본보기형을 평소에 정해두어라.
이건 제가 직장생활할 때부터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지만
가족, 상사, 직장동료, 친구, 선생님, 시댁, 옆집 이웃집, 애 친구 엄마, 택배아저씨, 자녀 친구, 슈퍼 아주머니 등등
이 외에도 우리는 하루에도 수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며 살아갑니다. 이 때 실수할 수 있는게 평소 다혈질이고 감정 표출을 잘 하는 사람은 조금만 기분이 나빠도 그게 금방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거든요. 그래서 인간관계 메뉴얼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정립해보시는 것도 추천드릴게요. 저 같은 경우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메뉴얼이 있는데요. 그 중 3개만 알려드리자면 1)웃는다 2)눈을 마주친다 3)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다.
이러면 만사형통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덩달아 미소 짓구요 눈을 마주치구요 답인사를 해줍니다.
내게 일어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자
불운은 당하지 말라고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녁은 맞히지 말라고 세워놓은 것이 아니듯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운도 본질적으로는 당하지 말라고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의 장단에 놀아다도록 내 마음을 맡기지 말라.
누가 내 몸을 아무 사람에게나 줘버린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자신의 마음을 아무 경우네나 남의 장단에 놀아다노록 맡겨버리면서,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면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니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나는 못난 사람이 될 수 없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내가 못난 사람이 될 수 없다.
나는 사람들의 인정도 받지 못해, 그냥 하찮은 존재야. 라는 생각으로 우울해하지 말라.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을 잘못된 삶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행위로 인해 내가 부끄러운 인간이 될 수 없듯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내가 못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내가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일에서만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면, 어떻게 이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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